김재석 [金在錫, 1900~1959]
【전남출신 목회자】
김재석(金在錫, 1900~1959)은 1900년 전남 광주에서 전남 광주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1912년 기독교를 믿기 시작하였으며, 1914년에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1924년 광주 숭일학교 고등과를 졸업하였으며, 1930년 6월에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였다(제25회). 이후 그는 전남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전남 송정읍교회 목사로 부임하였다.
【황해도에서 목회하다, 월남하다】
1935년에는 전남을 떠나 황해도로 임지를 옮겼다. 그는 황해도 신천(信川)읍에 있는 온천교회를 맡아 1939년까지 시무하였다. 이후 1939년 12월 3일에 신천읍 동부교회로 옮겨서 시무하였다.
해방 이후 그는 공산당의 핍박을 받다가 1947년 10월에 월남하였고, 1948년에 광주 서부교회에 부임하였다. 이듬해 1949년에 전남노회장에 피선되었으며 이후 6년간 연임하였다.
【1952년, 제37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
1952년 4월, 대한예수교장로회 제37회 총회에서 그는 총회장에 피선되었다. 제37회 총회에서는 김재준 목사를 그가 소속된 경기노회에게 명하여 목사직을 면직토록 결의했다. 면직의 주된 사유는 성경의 역사적 유오성 주장, 성경의 축자영감 부인, 오경의 모세 저작 부인 등이다.
1952년, 김재석 목사는 장로회 총회신학교 이사장에 선임되었다. 1955년 광주 숭일중ㆍ고등학교 교장에 취임하였고, 1957년 4월에는 광주신학교 교장이 되었다.
1959년 10월 16일, 별세하였다.
【김재석 목사에 대한 안광국 목사의 평】
안광국 목사는 김재석 목사에 대하여 “이 총회(분열당시)에서 N.A.E.측의 모든 지략은 김재석에게서 나왔다. 그는 회무에 능한 분으로 김상권, 박병훈, 정규오, 박찬목 등 소장들과 합의하여 회의에 대한 지략을 모아 진행하였다”라고 하였다. 총회장 노진현 목사는 “회무 중 ‘소원장이 살아있다’는 자신의 말에 ‘총회에는 소원장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들어왔고 법에 아주 분명한 증경총회장 김재석 목사가 일어나 ‘총회장의 대답이 법이다’라고 하자 다른 사람들은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