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주 [李文主, 1884~1945]

이문주 [李文主, 1884~1945]


이문주(李文主, 1884~1945)는 1884년 1월 23일, 경남 함천군 가야면 오사동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호주 장로교 선교사 왕길지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합천교회에 출석하였다. 1905년 5월, 그는 대구 남성정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1910년 서북지방 전도사로 목회일선에 투신하였다.


그는 호주장로회 선교회의 추천으로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여 과정을 이수하고 1918년에 졸업하였고(제11회), 그해 6월에 경북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는 칠곡읍 신동교회 목사로 부임하였고, 이후 달성군 점산교회, 상주읍교회 담임목사로 봉직하였다. 1924년 3월에는 대구 남산교회로 전임, 봉직하였다.

1936년 9월 10일에서 19일까지 광주양림교회에서 모인 제25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부회장에 선임되었다.


1937년 3월, 재단법인 조선예수교장로회유지재단 이사에 취임하였다. 이해 9월에 대구제일교회에서 제26회 총회가 개최되었고, 이문주 목사가 총회장으로 피선되었다. 제26회 총회에서는 배민수의 기독교 기반 농촌운동을 배격하기 위한 일제의 압력으로 농촌부가 폐지되는 일이 있었고, 배민수는 이후 개인적인 차원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일제 말기가 되면서 이문주 목사는 친일 행각을 보였는데 1939년 9월, 신의주 제2예배당에서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 연맹을 조직할 때 평의원으로 참여하였다. 12월에는 대구성경학원에서 국민정신총동원조선예수교장로회연맹 경북노회지맹을 결성할 때 이사로 참여했다. 또한 1942년 5월에는 기독교대구연합회 회장을 맡았으며, 11월 12일에는 장로회 총회 상치위원(常置委員)으로써 국민총력 조선예수교장로회총회연맹 주최 황군환자용 자동차 3대 헌납식에도 참여하였다. 1943년 4월에는 경북노회 상무위원에 임명되었고, 1944년 12월 24일에는 일본기독교 조선장로교단 경북교구장의 감투를 썼다. 그리고 1945년 2월, 경상북도 도청회의실에서 조직된 조선전시종교보국회의 경상북도 지부이사를 맡아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그는 해방 되기 전인 1945년 6월 16일, 숙환으로 별세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되었다(『친일인명사전 제2권』, 민족문제연구소 2009, 857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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