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에스더 [洪愛施德, 1892~1975]

감리교 장로, 여성운동가, 독립유공자, 교육가


홍에스더(洪愛施德, 1892~1975)는 1892년 4월 25일, 서울 새문안에서 홍정후(洪正厚)와 한메리 사이에 장녀로 출생하였다. 부친 홍정후는 개신교 선교 초기 언더우드에게 세례를 받은 후 한국교회 초기 지도급 인물로 활약하였고 갑오개혁에 중진으로 활약한 개화 선구자였다.

홍에스더는 1912년 이화학당 중등과를 졸업하였고 즉시 이화보통학교 교사로 취임하여 교육가로서 활동을 개시하였다. 이후 1917년에 이화학당 대학 본과에 진학하였다. 대학 본과에서 수학하면서 그녀는 만주에 세워진 무관학교를 지원할 목적으로 여성들이 중심된 동지회를 결성하고 이를 지도하였다. 1919년 3ㆍ1운동에 동지회는 깊은 관련을 맺게 되었다.


1920년 여름에, 김활란ㆍ김폴린ㆍ윤성덕ㆍ김함라ㆍ김애은ㆍ김신도 등과 이화 7인 전도대를 조직하여 평양ㆍ신의주ㆍ만주ㆍ곽산ㆍ정주ㆍ북진ㆍ양시ㆍ차련관ㆍ강서 등 북한 지역을 순회하며 전도강연회를 개최하여 7백명 교인을 얻기도 하였다.

1922년, 이화학당 대학 본과를 졸업하였고,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있으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1923년 6월, 세계기독교여자절제회의 틴링(Tinling)의 내한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여자절제회 설립운동이 전개되자 그녀는 유각경ㆍ최활란 등과 함께 그 발기인으로 활약했다. 그해 9월, 마침내 조선여자기독교절제회가 발족되어 그는 초대 회장에 취임하였다. 조선여자기독교절제회는 “절제 생활은 우리의 힘, 국산품 애용은 우리의 자랑!”이란 표어 아래 절제운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그녀는 미감리회 여선교사 채핀(A. B. Chaffin) 및 월터(A. J. Walter)의 후원을 얻어 미국에 유학, 테네시주의 스카릿대학 신학부에 입학하였다. 그녀는 1926년 스카릿대학 신학부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감리교신학교 교수로 취임하였다.


1927년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YWCA) 회장으로 취임하여 교육과 여성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또한 조선여자기독교절제회 이사로 계속 절제운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4월, 신간회의 자매기구 형태로 만들어진 여성 민족운동단체인 근우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으며, 5월에 열린 창립대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근우회는 1927년 2월, 3.1운동 이후 일제의 민족운동세력 분열정책이 기승을 부리던 때에 청년ㆍ학생ㆍ종교인ㆍ노동자ㆍ지식인 계층이 민족의 자주독립을 이념으로 신간회가 조직되자 이에 맞물려 여성계에서 결성한 민족운동단체였다.


1931년 남ㆍ북감리회가 합동하여 기독교조선감리회를 이루면서 여선교회도 합하여 기독교조선감리회 여선교회가 구성될 때 그 초대 회장에 선출되어 해방되기까지 역임하였다. 그해 9월 19일, 제8회 조선기독교연합공의회에서 회계에 선임되었다.

1934년에는 서울여자기독교청년회 총무를 역임하였다.

1935년 감리교 총리원 이사를 역임하였으며, YMCA 운동가인 이명원(李命遠)과 결혼하였다. 그녀는 결혼 후에도 계속 사회활동을 전개하였다.

1937년 감리교신학교 이사를 역임하였다.


해방 이후, 1948년에는 대한부인회 서울 종로구 신문로지회 회장에 취임하여 사회활동을 재개하였다. 1949년에는 감리교 총리원 부녀국장(1949~1952년), 감리교 총리원 중앙협의회 이사(1949~1956년)를 역임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1953년에는 대한여인회 서울본부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일제 말기 폐쇄되었던 여자기독교절제회 재건운동을 전개하였다. 1954년에는 한국전쟁미망인상조회 회장(1954~1964년)을 역임하였으며, 국회의원 축첩반대운동을 벌였다.

1956년이 되어 그녀는 기독교세계봉사회 부녀관장(1956~1960년), 이화여자대학교 이사(1956~1964년)를 역임하였으며, 이화여고 동창회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개최된 감리교세계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였으며, 정동제일교회 장로로 취임하였다.

1958년 명덕학사 이사를 역임하였다. 1961년에는 기독교여자절제회 제6대 회장에 취임하였으며, 여화여대 동창회에서 40년 교회 및 사회봉사 근속 표창을 받았다. 1973년에는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에서 표창을 받았다.

그녀는 1975년 10월 8일 서울 자택에서 별세하였다. 그녀는 1978년 독립유공자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용선(用善), 용상(用祥, 정동제일교회 권사), 용우(用雨, 재미), 용문(用汶, 정동제일교회 집사) 등 네 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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