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신화의 시대 : 나무 위에 집을 지은 유소씨(有巢氏)


이 세상에 인간이 처음 생겼을 때에는 날씨가 무덥고 사나운 짐승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이런 맹수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동굴에 살았는데, 그곳은 음침하고 습해 병에 걸리기 쉬웠으며, 너무 어두워 불편할 뿐 아니라 맹수가 들이닥치면 피할 길이 없었다.

사람들이 살 곳이 마땅치 않아 고민하고 있을 때 부락의 누군가가 나무 위의 새 둥지를 보고 자기도 나무 위에 새 둥지 같은 튼튼한 집을 지었다. 나무 위에 올라가 사니 편안하고 맹수의 공격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를 따라 나무 위에 집을 짓게 되었다. 그 때부터 사람들은 나무 위에 각양각색의 움막을 짓고 살았다.

이처럼 나무 위에 집을 지을 생각을 한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를 우두머리로 추대하고, 집을 만든 사람이라고 하여 ‘유소씨’(有巢氏)라 칭했다. 유소씨의 나무 위 집은 당시 원시 사회에서 대단한 발명이었다. 그는 대소(大巢)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삼황오제의 ‘삼황’에 속하는 인물로 여겨지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무 위의 집은 맹수로부터는 안전하지만 오르내리기가 불편하고 떨어져 다치는 경우도 종종 생겼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무 위의 집 대신 땅에다 튼튼한 집을 짓기 시작했다. 땅에 지은 집은 나무 위의 집보다 편리하고 안전했다.

유소씨란 이름은 『한비자』 등 전국시대 제자백가의 저술에 나타난다.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 수인씨ㆍ복희씨ㆍ신농씨 등과 마찬가지로 내용은 모두 후세인의 허구에서 나왔지만, 원시 인류의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는 역사 과정을 나름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삼황기에 나오는 수인씨(燧人氏)와 유소씨(有巢氏)는 이조시대(1,500년 전후 명종 때) 박세무가 지어서 모든 백성이 다 배웠던 『동몽선습』에도 등장한다.



『삼국사기』 41권(열전 제1)에서는 유소씨를 김유신(김수로왕)의 조상으로 소개하고 있다.

김유신(金庾信)은 왕경(王京) 사람이다. 〔그의〕 12세조(世祖)는 수로(首露)인데,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수로는〕 후한(後漢) 건무(建武) 18년 임인(壬寅; A.D. 42년)에 구봉(龜峯)에 올라가 가락(駕洛)의 9촌(村)을 바라보고, 마침내 그곳에 나아가 나라를 새로 세우고 이름을 가야(加耶)라 하였다가 후에 금관국(金官國)으로 고쳤다. 그의 자손이 서로 〔왕위를〕 계승하여 9세손(世孫) 구해(仇亥)에 이르렀는데, 〔구해는〕 혹은 구차휴(仇次休)라고도 하며, 유신에게 증조부(曾祖父)가 된다. 신라 사람들은 스스로 이르기를,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의 후예여서 성(姓)을 김(金)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유신비(庾信碑)에서도 또한 “헌원(軒轅)의 후예요 소호(少昊)의 자손이다.”라 하였으니, 곧 남가야(南加耶) 시조(始祖)인 수로와 신라〔왕〕는 같은 성이었다.

한편 『김해김씨 안경공파 족보』에는 수로왕 선계를 기원전 4257년경 중국 유소씨(有巢氏)를 1세로 하고 있다. 6세인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를 이은 56세 휴저왕(休屠王)은 두 아들이 있었다. 장남은 일제(日磾)이고, 차남은 윤(倫)이다. 차남 윤의 뒤를 이은 61세 융(融)의 아들이 수로왕이다.

김수로왕 선계, 출처: 『김해김씨 세보』, 안경공파, 2005.
▲ 김수로왕 선계, 출처: 『김해김씨 세보』, 안경공파, 2005.

【참고】

  • 『중국을 말한다 1 – 동방에서의 창세』, 양산췬, 정자룽 공저 / 김봉술, 남홍화 공역(신원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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