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필 [洪鍾弼, 1887~1935]
장로교 목사, 장로교 제19회 총회장(1930년), 교육가
【출생이후 1915년까지】
홍종필(洪鍾弼, 1887~1935)은 1887년 강원도 평해(현재의 경상북도)에서 홍재찬(洪在贊)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3세에 숙부 홍재신(洪在信)의 양자가 되어 한학을 수학하였다.
1906년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1907년에는 경성 양지아문 측량과를 졸업하였다. 1912년 5월 군산 개복동교회의 김필수 목사에게 세례를 받고, 1915년 6월 24일에는 개복동교회 제2대 장로로 장립되었다. 그의 형인 홍종익은 개복동교회 초대 장로로 봉직하였다.
【1916년부터 1925년까지】
1916년에는 전북노회 서기로 선출되었으며, 1917년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였다. 1922년에는 개복동교회 조사가 되어 본격적으로 목회를 시작하였다. 1923년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한 후, 전북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고, 개복동교회 목사로 부임하여 13년간 시무하였다. 또한, 목사 안수를 받은 직후 조선예수교장로회 제12회 총회 부서기로 선출되었다.
1924년에는 전북노회장을 역임하였고, 같은 해 제13회 총회에서 회록서기로 선출되었다. 그 후 9월 24일, 새문안교회에서 열린 제1회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에서 부서기로 선출되었다. 1925년에도 제14회 총회 부서기로 선출되었으며, 9월 23일 수표교회에서 열린 제2회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에서 부서기로 다시 선출되었다.
【1927년부터 1935년까지】
1927년에는 제16회 총회에서 서기로 선출되었으며, 마산 문창교회 박승명 목사 성추문 사건1에 대한 조사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8년 제17회 총회에서 서기로 선출되었고, 이듬해인 1929년 제18회 총회에서도 서기로 선출되었다. 1930년에는 제19회 총회에서 총회장에 선출되었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43세였다.
1935년 5월 29일, 48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별세하였다. 전북노회 제30회 회의록에는 그에 대해 “先生은 천성이 沈眞하시고 言少遠念하사 진리를 敬愛함으로 一般信者에 根本이 되시였다”(전북노회 제30회 회록)고 기록되어 있다.
홍종필은 부인 김완윤(金完允)과 자녀 6남 1녀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