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기 제1권] 서울 3년 – 인쇄된 첫 글
인쇄된 첫 글 당시 백부님은 서울 견지동에 한성도서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취체역1 겸 전무로 출판사업에 전념하셨다. 「서울」이란 월간 종합잡지, 「학생계」란 학생을 위한 월간지도 내셨다. 「학생계」 편집은 그 때 새파란 청년인 오천석2 씨가 …
인쇄된 첫 글 당시 백부님은 서울 견지동에 한성도서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취체역1 겸 전무로 출판사업에 전념하셨다. 「서울」이란 월간 종합잡지, 「학생계」란 학생을 위한 월간지도 내셨다. 「학생계」 편집은 그 때 새파란 청년인 오천석2 씨가 …
1920년대의 서울풍경 예정대로 서울에 닿았다. 여름철이라 사람들은 모두 풀먹여 빳빳하게 대림질한 하얀 모시 두루마기를 입고 다닌다. 고이적삼까지도 구김새 없는 모시로 입었다. 말쑥하게 땟벗이 한 문화족속임에는 틀림없었지만 어딘지 매끄럽고 약해 보였다. …
웅기서 서울로 때는 3ㆍ1운동 다음해 – 나는 그때 웅기 금융조합에 서기로 있었다. 나이는 스무 살. 웅기서 한 오리 떨어진 해변에 웅상이란 동네가 있다. 일찍부터 기독교촌이었다. 거기 출신인 송창근1 씨가 서울 …
외투리 풋내기도 결혼하자마자 나는 회령군청에서 웅기금융조합으로 전직했다. 그 때 웅기에는 은행이 없었기에 금융조합에서 은행업무도 얼마 맡아 상인들 편리를 봐주곤 했다. 그것이 3ㆍ1운동 다음 해였지만 웅기에는 교회가 너무 약했고 경찰이 너무 …
향동학교 그 무렵에 경원 함양동 외갓집 동네에는 사립학교가 생겼다. 거기 황수봉 씨라는 경성 함일학교 다니던 분이 계셨기에, 우리 외사촌 형님들은 그이와 협력하여 사립향동학교라는 학교를 설립하고 학부 인가까지 맡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
증조부님과 조부님 내 증조부님 함자는 『덕영』 씨다. 선조 대대로 적지 옆 홍의동에 살다가 『상리』로 옮겨 우리 『종가』집을 세우신 분이다. 땅 약 3만평쯤 개간해서 일약 『대농』축에 들었다. 그 때에는 개간만하면 제 …